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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 일본 여자친구와 사귀게 된 과정, 사귀면서 느낀 썰

by 여설꿀 2021.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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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2년 전 처음 계기는 코네스트(コネスト)

라는 일본 사람들 위한

한국 관광, 유학, 취업 정보 사이트였음.

왜 이런 사이트에 접속하게 됐느냐 하면
일본어 배우고 얼마 안 됐을 때

다니던 학원 선생님이 이 사이트 해보면

어떻겠냐고 추천한 적이 있었다.

거기 생활, 교류 란에 들어가면

사이트 이용자끼리 얘기 나누거나

친해질 수도 있다고.

그 당시엔 일본어 실력도 딸리고 하니

걍 한 귀로 듣고 흘렸었는데
한참 뒤 일본어 어느정도 익숙해지고

문득 생각나서 들어가 봄

근데 웬만한 건 읽히더라고
이때까진 여기서 여자친구를 사귀겠다

그런 건 별로 크게 생각을 안하고 있었음

물론 나도 남자인 이상 기왕이면

여자랑 대화하는 게 기분 좋겠지만

 

여기가 뭐 데이팅 앱도 아니고
분위기가 그만큼 들떠 있기를 해

글리젠이 높기를 해

 

애초에 사이트의 주 목적이

펜팔이 절대 아니니까
그래, 이런 곳에서 맺어진 커플이래봐야

몇이나 되겠냐

걍 어떤 사람이건 간에

일본어로 떠들 수 있는 친구 한둘 만들어놓자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땐 남자도

대화 상대로 딱히 가리진 않았는데
한국 여자 찾고 다니던 일본 아재가

날 여자로 착각하고 카톡 친추했다가

내 프사 보고 읽씹하고 튄 일도 있었음;;

그러던 중 만나게 된

일본 사람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이 여자다.
지금부터 편의상 H라고 지칭하겠음

한국 도착한지 대략 3일 정도

나이는 빠른 년생으로

사실상 나와 동갑이었고 현 거주지가

우리 집에서 가까웠던 닛폰 사람.

만나고자 하면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상대가 산다는 것은

확실히 큰 메리트가 된다

난 원래 펜팔 자체를

딱히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데
이상한 사람이 많긴 해도

온갖 인간 군상이 모여 있는 이상

 

정말 괜찮은 사람도 그 중에 있기 마련이고
실제로 좋은 결과로

이어진 커플이나 부부를 여럿 봤기 때문.

근데 그것과는 별개로

나 자신의 개인적인 성향은

펜팔과는 어울리지 않는 편이라
멀리 사는 사람과 연락하게 되면

몇번 주고받다 결국 내쪽에서 귀찮아서

먼저 그만두게 되는 경우가 허다했음

그래서 원거리 랜연하시는 분들이

더욱 대단하다고 생각함

어쨌건 H에게 좀 흥미가 생겨서
얼굴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 이틀 정도 쪽지를 주고 받았다

가끔은 답장이 느리기도 했고

빠르기도 했던, 딱 그정도 관계.


대략 서너시간에 한번쯤 오고 간 것 같음
그러다 서로 카톡을 교환했고

그쪽으로 옮겨서 대화를 이어가게 되었는데

어땠을 것 같냐?


에이, 그래도 일단 카톡인데

알람도 안 떠서 생각날 때마다

직접 접속해서 답 왔는지 확인해야 하는
그런 낡은 사이트보다야

답장이 빠르지 않았을까?

아쉽게도, 그렇지 않았다

 

H의 답장은 오히려

쪽지로 주고받던 시절보다도 더 느렸다.

거의 하루 뒤에 답장 오는 경우도 있었고;;

아니, 이럴수가 있는 거임?? 카톡인데

어캐 아날로그식 쪽지 교환보다 더 느려짐??

얘가 대체 왜 이랬느냐
나중에 들은 거지만
당시 남자 경험이 아직 없었던

H는 내가 쌩 양아치인 줄 알았고,
(모솔. 내가 첫 남자였음)

그래서 나한테 당하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하고 있었다.

얘 만나기 전 금발로 탈색했던 시절의

카톡 프로필도 그런 인식을 주는 데에

한몫했을 테고

내가 말 끝마다 데스(です、~입니다)가

아닌 っ스(っす、~임다)를 붙이면서
그렇슴까, 좋슴다! ㅇㅈㄹ하고 앉아 있으니까

(당시에 일드 영화 같은 것들 보면서

걍 친근한 말투인 줄 알고

빨리 친해지려고 썼음...)

아무래도 일본 여자 여럿 사귀어 봐서

저런 말투에 익숙한

날라리일 가능성이 있다 생각하고

안전을 위해 살짝 거리를 둔 모양.

실제로 카톡 답장 빈도를 보면

그래도 처음엔 괜찮다가

내가 저 말투 쓴 시점부터

확실히 느려진 거 볼 수 있었음

 

아니;; 저 클럽도 안 가본 인간인데...

 

그 사정을 몰랐던 당시엔

 

'내가 사귀려고 들이대는 것도 아니고

대체 쟤 왜 저러지?'

하고 살짝 짜증은 났는데

일단 여자에 크게 연연하던

시기는 아니었던지라

'딱 두 번까지만 더 참고

그래도 이런 식이면 걍 손절해야겠다'

이렇게 생각을 굳히던 중이었다.

다행히도 정말 그렇게 되기 전

어찌저찌하다 H와 약속을 잡았고
역 앞 출구 쪽에서 한번 얼굴이나 보기로 함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일지도

모른단 생각으로 편하게 갔지만,
상황은 좀 다르게 흘러가게 된다.

당시 H의 카톡 프로필 사진은

단발에 등 돌리고 시크하게

계단 내려가는 모습이라
그것만으론 약간 차가운 인상을 주었는데

실제로 만난 H는 노란색 옷 입고 온 게

하는 짓도 순해 가지고

꼭 병아리 한 마리 보는 것 같았음ㅋㅋㅋㅋ

근데 침착하고 수줍은 것 같으면서도

장난도 제법 칠 줄 알고

긴장 풀리니 생각보다

말도 많은 게 의외로 귀여웠다.

나도 처음엔 좀 점잖게

이미지 관리 하려 했는데,

같이 말 좀 섞다 보니까

어느새 걍 다 내려놓고 편하게 다 깐 채로

대화하는 자신을 볼 수 있었음


뭐 지금 생각해도

제법 즐거운 하루였던 것 같다


카페에서 공부하면서부터

서로 대화 코드가 꽤 맞아서

시답잖은 잡담만 한 세시간은 했고,

카페 나와서는 코인노래방 가서

둘이 아는 곡들 같이 빽빽 지르고

밤에는 밥 먹고 신촌 버스킹 잠깐 보다가

홍대까지 걸어서 산책하고

그 뒤에도 서로 뭔가 아쉬우니

근처에 앉아서 계속 얘기 나누다가
거의 막차 시간 맞춰서

집에 돌아간 기억이 남

나중에 들은 이야기론 H가 이때

나한테 제법 큰 호감이 생긴

포인트가 있다고 했다.

밥 먹고 나와서 버스킹 보던 때였는데
내가 멍하니 서 있다가

입에 물고 있던 이쑤시개를

그만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렸음

어두운 와중에 쪼그려 앉아서

그 조그만 이쑤시개 열심히 찾아다니다

결국 다시 주워서 잘 챙겼는데

그걸 보고 있던 H한테는

나랑 직접 대화해보고

긍정적으로 변해가던 이미지가
딱 그때 확실히 호감으로

탈바꿈하는 터닝포인트가 되었다고 함


얘가 길거리에 침 막 뱉거나

쓰레기 버리는 부류의

사람을 싫어하는데

그렇게 자기 쓰레기 열심히 챙기려는

내 꼴이 웃기기도 하면서 좋아 보였고,
일단 하는 짓이

확실히 날라리 같진 않았다고

(사실 난 날라리는커녕

주기적으로 연락하는지인이

둘뿐인 개찐따다...)

여하간 이런 얼빠진 모습으로

호감을 사는 게 가능하구나

싶어서 꽤 신선한 부분이었다.

 


귀가하기 전 홍대 벤치에서

수다 떨 때 농담 삼아

 

"나도 답장 느린 편이니

딱히 상관은 없는데 너 답장은

솔직히 좀 심하긴 한 듯ㅋㅋㅋ"

이런 식으로 가볍게 말을 했었다.

아무런 의도도 생각도 없는 말이었는데

그걸 의식한 건지 몰라도
그날 헤어지고 귀가하는 길에서

H는 내게 바로 선톡을 해왔고,
한동안 내가 보내는 메시지에

나보다 빠르게 답장을 하는 성의를 보여줬다

나중에 얘 라인 대화목록 보고 알았는데,
진짜 친한 친구랑도 하루에 문자

네다섯개 오고 갈까 말까 하더라

애초에 일본인들은

문자를 그렇게 자주 할 일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정말 많은데

여러모로 나한테

노력했단 걸 알 수 있는 부분.

지금까지 만나온 여친들 중에선

연인을 위한 배려나 노력이란 걸

개똥만큼도 고려 않는 애들이

부지기수였기에

그걸 모르는 입장에서도

충분히 호감이 가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후 H와 전화를 하며

사이가 가까워져 가던 중

서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다

당시 H를 좋아한다는 자각은 대충 있었으나

사귀는 것에 대해

미처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던

당시의 나는 무심코 내 연애 경험이 대략

5~6번 정도 된다고 말해 버렸는데

그 말을 들은 H는 되게 창피한 듯

주저하다가 사실

자신이 남자와 연애해 본 적이 없다고
즉 모솔이라 고백한 거다


지금 같았으면 이 여자가 나 말고

다른 사람을 만난 적이 없구나!

하고 기뻤을 테지만,
오히려 그때는 그런 부분이

크게 내키거나 하진 않았다

그 이유란

당시의 나는 연상이 타입이었기 때문.

내가 직접 상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것보단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다 괜찮다고 감싸주는

그런 눈나력이 높은 사람 쪽을

더 선호하던 시기였다


당연하겠지만

그런 기댈 수 있는 누나라면

대개 나이가 차면서

연애 경험도 여러 번 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인생의 쓴맛을

경험해 왔기에 정신적으로 성숙해진

케이스가 많기 마련이다

연애를 해본 적도 없는 모솔에게

그런 성숙함을 바란다는 것은

상당히 가혹한 일일 수밖에 없다

전 애인의 땡깡질들에 지칠대로 지쳤던

나는 이 연애 초보 H와 사귀게 되면
또 내가 다 리드를 하고 계획을 짜고

기분도 맞춰줘야 하는 등

피곤한 관계가 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약간 있었다


근데 생각해보니

사귀기도 전에 김칫국 드링킹하는

내 꼴이 우습기도 해서
요런 잡다한 것들은

걍 나중에 생각하기로 함

그런 것을 다 따지기엔 얠 좋아하는

감정의 크기가 생각보다 컸음
이때 기준으로도

얘 이전 짧은 인연들의

몇 배는 되었던 것 같고

뭐 애초에 그땐 사귄다 해서

이렇게까지 오래 가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으니까


다만 다른 거 제쳐두고

고백하는 타이밍만큼은

좀 빨리 잡아야 할 것 같았다.

얘가 반년 유학으로 5월 말에 왔으니

11월 말까지는 돌아가야 한단 소린데,
만약 내가 질질 끌다 8월 말쯤 고백해서

혹시 사귀게 되면

꼴랑 세달밖에 같이 못 있게 되는 거 아냐

6개월이 아닌 1년 유학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서두를 일은 없었겠지만...


서로를 알게 된지 2주쯤 되는 날.

첫 만남 때부터 다닌 카페에서

손 크기를 재다가 자연스럽게

손을 서로 마주 잡게 되는 일이 생겼음

어쩌다 보니 분위기 타서

부끄러워 죽을라 하는 애 뺨에 뽀뽀도 하고
또 어쩌다 보니 머리도 쓰다듬게 되고

그 다음엔 분위기가

묘해져서 카페 나올 때까지

아무런 말도 안하고

서로 계속 껴안고 있기만 했다.

얘 심장 쿵쾅쿵쾅 터질라 하는데 좀 웃겼음

그날 손님이 원체 없었던데다

애초에 안 보이는 쪽 자리에 앉았어서

다른 사람들 시선 같은 부분은 괜찮았다.


근데 나도 이 상황을 딱히 계획했다거나

한 건 아니라서

속으론 약간 당황하는 중이었다

다음 만남쯤 돼서

고백해볼까 하던 참이었던지라

아무리 시간이 없다지만

H한텐 이런 게 처음인데

너무 빨랐나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음


의외겠지만

연애 경험이 적은 여자들이

오히려 잡생각이 더 많은 경우가 있음

스킨십 성공했다고 그냥 그대로 맘 놓고

스트레이트로 박아버리기보단

이 관계가 끝나버리지 않도록

천천히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나 또한

'이거 씨, 얘가 지금은 괜찮은데

이따 바이바이하고 집 갔더니

생각 많아져서 나 손절하는 거 아니겠지?'
등등 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뭐 일단 자연스럽게

같이 방탈출 카페도 갔다가
(방탈출하는 동안만 손 놓고 있었음)

배고픈 김에

내가 좋아하던 짬뽕 잘하는 중국집도 감

지금 생각해보면

사귀는 날 짬뽕 먹은 것도 어이가 없네
왜 그랬지


다 먹고서 소화한답시고

또 홍대까지 산책했음

당연하다는 듯 사귀는 사이처럼

서로 손 잡고 있었는데

얘도 부끄러워 하면서 쫄래쫄래 따라왔다

아직도 기억나는데

책거리 쪽 짬뽕 순두부가 바로 보이는

벤치에 살짝 떨어져 앉아 있었다

상황도 이렇게 됐으니

고백쯤이야 쉬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음

내가 얘보다 비교적 가볍고 편하게

관계를 시작하는 성향인 건 맞는데
뭣도 모르는 애 마음 가지고

노는 꼴이 되는 건 도통 내키지가 않아서

그 자리에 앉은 채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한참 고민했던 것 같음

'내가 얠 진짜 좋아하는 걸까?'
'금방 식지 않고 잘해줄 수 있을까?'


계속 생각하다

이 관계를 어느정도 진지하게 바라보자는

내 나름의 결론을 내린 뒤

그 자리에서 길고 조심스럽게 고백함

내용을 뭐 일일이 다 적을 수는 없지만

아직까지 기억나는 것들만

간략히 요약한다면


"짧은 기간만에 고백해서

신뢰가 가지 않을수도 있겠지만,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고백하는 건 아니다.

내 나름대로 고민을 해서 내린 답이고

물론 네가 한국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기도 하니

서두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일단 내 마음이 확실한 이상

더 질질 끌 필요가 없다 생각했다.

우리의 관계를

좀 더 진지하게 바라보고자 하는데

같은 생각이라면 믿고 따라와줬음 한다"


대충 이런 모양새였던 것으로 기억함
이렇게 적으니 상당히 오글거리지만;;

내가 직접 뱉은 말이니 주워담을 수도 없고

뭐 먹혔으면 됐지


나는 이때 얘한테 신용을 보여주려 했다.

난생 처음 남자랑 단둘이서

이런저런 걸 해보는데

그 속도가 일본에선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급발진이면
보통 바로 믿고 그 흐름에 타기엔

어느정도 불안이 있기 마련

굳이 설명 없이 사귀어 가면서 천천히

신뢰를 쌓아가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연애가 처음인 상대가 조금이라도

편한 마음으로 있을 수 있도록 한

내 나름의 배려라 할 수도 있겠다


H는 이때 잠시 생각하다

부끄러워 하며 이이요?

하고 좋다 대답해 주었다

이 당시엔 뭐 대충

얘가 짧은 시간 동안

고민 많이 했겠구나 싶었는데,

나중에 H가 해준 말로는

이미 첫날부터 호감이 생긴 상황이었고

전화 주고 받으면서

그 호감이 많이 커진 터라

고백이 정말 기뻤단다

만약 자신 쪽에서 먼저 고백해야 한다면

용기가 잘 안 나서 시간

한참은 걸렸을 거라고

그래서 내가 고백해 준 점이 고맙다고

아마 정말 큰 삽질을 하지 않는 이상

언젠가 사귀게 되는 건

확정된 수순이었던 것 같다


뭐 고백이 너무 빨라서

인생 최초의 썸이 짧았던 게 좀 아쉽다고

가끔 장난식으로 얘기는 나오는데
그래도 빠른 고백이

결과적으로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음

만날 수 있는 기간이

길어진 것도 길어진 거지만

나중에 한국 생활하다

보니 H한테 인스타 디엠으로

집적대던 남자들도

몇명씩 생겼거든ㅋㅋㅋㅋ

 

(그래서 얘 자기 인스타도

친구 공개로 돌려놓음)

인간 관계에 있어서 극도로 조심하는

H를 크게 걱정하진 않지만

그런 일이 생기기 전

빠르게 연애 중이라는

쐐기를 박아놓은 점은

그래도 확실히 안심이 되었다

남자친구가 아니라면

남사친이건 모르는 남자건

대화해도 막을 권리가 없지만
남자친구 입장에선

의견 정도야 낼 수 있는 부분이니까


그렇게 우리는 홍대에서 한참 붙어

이챠이챠 대화하다 집으로 귀가했고

그날 이후 2년 넘게 만나오고 있다.

대충 사귀게 된 썰은 여기까지.

 


지금부터는 사귀어 오면서

느낀 점들에 대해 말해보려 함.

H는 여러모로 고마운 부분이

참 많은 사람이다

얘 이전에 일본 여자를

경험해 본 적이 없진 않아서
일본 사람이라

이러이러하다 말하는 게 아님

그냥 얘가 좋은 사람인 거야


난 연애 초기에는

항상 나를 기쁘게 하는 행동이 어떤 건지
내가 어떤 여자를 좋아하는지를

일부러 말하지 않는데

진짜 날 빡치게 만드는 여자라면

바로 거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그렇기에 밑의 장점들은

다 내가 그렇게 만들도록 유도하거나

강제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얘가 알아서 한 본연의 자연스러움

그냥 얘 자체의 특징이란 소리.


우선 만나고 얼마 안 되어

바로 느낀 점부터 말하자면


첫번째.
한국 남자에 대한 망상

일본 여자에 대한 망상을

서로에게 대입하지 않는다는 점

한국 남자는 역시 이러이러해서 멋있지~

뭐 이정도는 해야지~
또 연예인 누구랑 비교하면서

저 사람처럼 해봐 이런 게 전혀 없다

예전에 데이식스인가 하는

아이돌 밴드 좋아하는 중국 여자랑

짧게 사귄 적 있는데

리얼 입을 뗄 때마다

정떨어지는 말만 해서 못 버티겠더라고

나를 나로 바라봐줘서 좋았다.


두번째.
연락 면에서 걱정을 많이 덜어주는 점

연애 문제에 있어서 가장 큰 건

서로 의심을 안하는 거겠지만,
사귀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점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정도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던 적이 없고

이만큼 오래 가본 적이 없었기에
다른 사람한텐 생각도 안했던

걱정을 조금씩 하기 시작함

그걸 알게 된 H는

내가 바람피는 거 아니냐

생각하지 않도록

일본인 입장에선 노력 많이 해주고 있음

보통 답장이 정말 늦어도 2시간 정도고

보통 여유가 있을 땐

10, 20분에 한번씩 하는 편이다
또 어디 약속 있어서 가게 되면

같이 있는 사람과

꼭 사진을 찍어 보내주는 등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정말 많이 맞춰주는 편이라 생각한다


세번째.
항상 멋있는 모습으로

있어야 하는 부담감이 없다는 점

처음 만났을 때

이후 대략 10키로가 넘게 쪘는데
H는 한번도 그거로

정 떨어졌단 모습을 보여주거나

살 좀 빼면 좋겠다고 닦달한 적이 없음

내가 물어본 적 있는데 고도비만이라

건강에 무리 가는 수준만 아니면 된다고 함
오히려 지금이 더 귀엽다고;;

그럴 수가 없을 것 같은데


그리고 방구도 실수로 한번 뀌게 된 걸

계기로 먼저 나부터 트게 됐는데

방구 뀔 때마다

엉덩이 팡팡 때리면서 웃더라고

(그래서 H한테도

방구 좀 뀌라고 했는데 절대 안 뀜.

이해가 안되는데

가족 앞에서도 뀐 적 없다 함)

좀 창피하긴 한데

이런 거에 질색하거나

이러진 않아서 고마운 부분


언제 한번 커플 유튜브 동영상 중에

우연히 방구 몰카를 본 적이 있음
남자가 배가 많이 아프다고

방귀 뀌는 척을 하는데

여자가 걱정은커녕 진짜 질렸단 얼굴로

 

'진짜야? 아니지?'

 

또 몰카 밝혀지고 나선

 

'지금까지 이런 적 없었던

남자친구가 갑자기

이런 모습을 보여주니까 슬펐다'

 

이러더라고

H가 이런 사람이었으면 내 성격상

상당히 스트레스 받았을 거라 생각함

네번째.
돈 문제에 배려심이 깊다

1)
첫날 카페 갔을 때 얘 테스트해볼 겸

내가 내줄까? 했었는데

한사코 말리더라고
남한테 돈을 다 내게 하면

미안해서 못 견딘다고

한국에

 

'여자는 관심없는 남자에게

더치페이를 해준다'

 

는 말이 퍼져 있는데

이거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닌 듯ㅎ

이후 사귀면서부턴 기분 내킬 때

한번씩 내가 사주려고 하는데

그럴 때마다 진심으로 괜찮다고 함;;
그래도 한번 사주면

쑥쓰러운 듯 고맙다 하고

사귀면서 예의상

더치페이하려는 애들은 꽤 봤지만

(내가 내주길 은근 바라는 눈치로)
진짜 이렇게 진심으로 거절하는 사람은

거의 못 봐서 신기했음

뭐 일단 더치페이 부분은

당연한 거니까 넘어감


2)
한국 생활 당시 걔 집이

서울 쪽에 있었으니

그때만 해도 뚜벅이였던 내가

주로 지하철 교통비 충전해 가면서

왔다갔다 하는 편이었음

뭐 정작 나는 별 생각 없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걔 쪽에서
나 교통비 너무 많이 쓰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앞으로 내 교통비를

자기가 반 부담하는 게 어떻냐더라

 

이게 대체 뭔 소린가 싶어서

거절하긴 했지만 정말 띠용~ 했다

3)
일본 놀러갔을 때 사토 타케루 나오는

무슨 불치병 환자에 대한

실화 바탕으로 한 영화 본 적 있는데

 

그거 보고 나 꼭 껴안더니
돈은 못 벌어도 되니까

자기가 책임지면 되니까

건강하게만 살아달라 하더라

마음이 찡했음

 


다섯번째.
페미니즘, 역차별을 싫어함

이 부분이 H의 장점이란 건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뭐 이걸 단점으로 꼽는 애들도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본인이야 페미니스트 만나면 되는 거고

나도 굳이 거기에 대해 뭐라 하지 않을테니

괜히 태클 걸지 않길 바람


난 이전 트위터 중독에 페미니스트였던

전 애인과 헤어진 뒤 미투 당하고
주변에서 이미지 씹창날대로 씹창났다가

증거 사진이 있어 겨우 살아났던 경험이 있다.

큰 트라우마로 남았고

자살 생각까지 했으며

극복하기 위해 한동안 고생해야 했다.

H한테도 말하기가 힘들어

일년 반 정도는 지나고 나서야 말했던 일인데

얘기를 듣더니 울면서

고생 많았다고 안아주더라

'뭐야, 얘 성추행 같은 거로

엮인 적 있어? 좀 깨네'

 

할까봐 정말 주저하다 꺼낸 이야기인데

이런 반응을 보여주니 너무 고마웠음

뭐 어쨌든 누가 한국식 페미니즘이건

서양식 페미니즘이건

자신이 페미니스트라 한다거나

그쪽 분야에 일말의 흥미라도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엮이고 싶지 않다


H는 처음 만났을 때

페미니즘이 뭔지도 정확히 몰랐다가

역 앞에서 시위하는 거라든지

여러 사건들 보면서 알게 된 케이스인데
(내가 미투 당했던 걸 얘기하기 전부터)

너무 과격하고

이기적인 사상이라고 싫어하더라
저게 여자한테 정말

도움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고,
자기가 하고 싶은 옷차림이나

화장도 있을텐데

그걸 못하게 강제하는 것도 이상하다고

나중에 결혼해서 딸을 낳게 되면

한국보단 일본에서

교육시키고 싶다고도 했음
과격하고 신경질적이면서

남한테 의존적인 성격으로

자라지 않길 바란다고


그러다 한번은 청계천 산책하다

먼저 얘기해옴

82년생 김지영 영화가 일본 개봉할 때

일본어로도 유튜브 동영상이 올라왔는데
거기 댓글 중에

 

'역시 한국은 이런 작품들이 많아서 멋있다

일본도 페미니스트들이 더 늘어나야 한다'

 

뭐 이런 것들이 좀 있었나 봄

H가 그 얘기하면서
일본에도 이런 작품들에

휩쓸리는 사람이 생각보단

많은 것 같아 좀 슬펐다더라
이 사람들은 한국의 현실을 직접 못 봐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뭐 난 얘만 안 물들면 그만이긴 한데...

이런 점은

내가 얘한테 따로 표현은 안했어도
둘의 관계를 더 깊게 생각하게 되는 데에

확실히 큰 영향을 준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여섯번째.
자립심 있고 성숙한 성격

H는 연애 면에선

내가 얼굴 빤히 보기만 해도 호달달

떨면서 시선 피하는 연애 고자였지만,
그 외의 면에서는

이미 처음 만날 때부터

나보다 몇배는 어른이었음

그렇기에 누나처럼 성숙한 사람을

좋아하던 나에게도

의외로 정말 딱 맞는 사람이었다

유학 비용도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고

일본에서 조리사 일을 하면서

모았던 돈으로 왔고

가끔씩 일본으로 돌아갈 때마다

알바 일이건

조리사 쪽 일이건 뭐든 해서 돈 모으고,
지금도 결혼 위해

가족 일 도와주면서 돈 버는 중이다

짐도 정말 무겁지 않으면

내가 도와준다 해도

자기가 다 들려고 하는데
이건 진짜 한 서너 번 말해야 줌...


이외에도 내 취향인 얼굴부터

마른 체구에 비해 공격적인 몸매
연인의 취향을 존중해주는 점

장난에 민감하지 않은 점

스트레스를 나한테 풀지 않는 점
등등 장점 꼽자면 참 많겠지만

생각나는 단점이라곤 딱 한가지뿐이다.

힘은 강한 편인데

몸이 좀 비실비실한 경향이 있단 것..
알레르기나 스트레스성 두드러기 등등

너무 더우면 쓰러지려 하고 그럼

사실 단점도 아님.

그냥 보고 있으면 걱정될 뿐
건강 챙기게 많이 맥여야겠다


요리 등 집안일은

각자 할 수 있는 부분 등을

맡아서 하는 편이다
H가 요리하면 내가 설거지를 하는 등
하지만 H가 깔끔떠는 성격인지라

본의 아니게 나보다 좀 더 많이 하게 됨..

현재는 결혼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후 내가 일을 하고

H가 전업주부를 하게 된다면

H 쪽이 집안일을

좀 더 담당하게 되겠지만

 

그때도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도와주려고 생각 중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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